태백은 세 번이나 천하를 양보했다
태백(泰伯)은 논어 제8편으로 21장으로 구성되었다. 예의와 인(仁), 효행 등 사람의 덕성에 대해 얘기하였고, 특히 현명한 사람, 군자에 대한 공자의 말을 기록하였으며 증자의 언행을 기록한 내용이 6장에 이른다.
子曰. 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자왈, 태백, 기가위지덕야이의. 삼이천하양, 민무득이칭언.)
공자가 말하기를 “태백은 가히 최고의 덕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이나 천하를 양보했는데 백성들은 그를 어떻게 칭송해야 할지 몰랐다”
태백은 주나라 태왕의 맏아들이다. 왕위는 대부분 맏아들에게 계승되었다. 태왕에게는 맏아들인 태백과 둘째인 중옹(㑖雍) 그리고 셋째인 계력(季曆)이 있었는데 태왕은 셋째인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다. 이를 안 태백은 오나라 땅으로 숨어서 계력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세 번 양보했다고 한 것을 두고 여러 설이 있는데 첫째는 태왕이 병이 들자 약초를 캐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오, 두 번째는 태왕이 죽고도 돌아가지 않은 것이오, 세 번째는 상(喪)이 끝나고도 머리를 삭발하고, 쓸모없는 사람 행세하며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백성들이 태백을 칭송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 것은 태백이 은밀하게 왕위를 양보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백성이 알지 못했다는 말이다. 공자는 태백이 왕위를 양보하고도 남들이 알지 못하게 은밀하게 했다는 점을 태백이 최고의 덕을 가졌다고 한 것이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그리고 우(禹)임금은 모두 선양(禪讓)으로 임금의 자라를 이어 천하를 태평하게 이루었다. 그런데 주나라 사람들의 전하는 말에는 태왕은 계력과 손자 문창왕을 아꼈는데 이는 계력이 나이가 어린 후궁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왕이 늦게 태어난 어린 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한 것은 대부분 어린 왕의 어미인 후비(後妃)나 후궁에게 애정을 주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태백이 현명한 사람에게 왕위를 양보한 것은 숭고한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문왕은 현명한 군왕으로 칭송받았으며 문왕의 아버지가 바로 계력이다.
그런데 태백은 오나라로 가서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일대를 관할한 오나라의 시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