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함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 축령힐스테이 자연치유센터 대표, (사)한국술문화연구소 이사, 술·발효 연구가, 자연요리연구가 등. 바쁜 생활을 할 법 한데 만나보니 ‘자연을 공부하고, 이웃과 나누며, 느리게 사는 사람’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IT 업체의 이사로 재직하다 도시가 아닌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제 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던 김 대표는 축령산에 반해 장성에 둥지를 틀었다.
“처음에는 제주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섬이어서 그런지 타지 사람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더군요. 다른 곳을 알아보러 다니던 중 축령산을 보고 ‘참 좋다’ 생각하며 택시를 타고 가는데 폐허가 된 마당 가운데에 토끼가 쉬고 있는 걸 봤어요. 산토끼로 보였는데 순간 ‘치유하러 내려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매물로 나와 있어서 일주일 만에 계약했어요”
삶의 터전과 방식을 바꾸게 된 날을 기억하는 그의 표정과 눈빛은 진지하면서도 생기로 가득 차 보였다. 그렇게 처음 찾은 낯선 곳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 그는 귀촌한 지 5년 만에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교류하며 장성의 발전을 고민하는 ‘장성 사람’이 됐다.
막연하게 시골 생활을 동경하다 암으로 투병하는 장모님을 돌보며 ‘건강할 때는 멀리 있는 듯 느껴지지만 정작 암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김 대표는 귀촌하기 전 7~8년 동안 자연요리를 공부하고 한옥학교에도 다녔다. 삶의 해답이 자연에 있다는 믿음을 얻은 덕분이다.
“자연요리는 자연의 원리에 순응해 만드는 것이 기본이에요.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장류와 장아찌, 식초, 술 등 ‘발효’를 기본으로 하는 음식들을 연구하고 제가 직접 담급니다. 이곳(축령힐스테이 자연치유센터)에는 항암, 방사선 등 화학적 치료를 경험하신 분들이 많이 오시는데 도시에서의 습관을 버리고 식습관, 생활습관을 바꾸는 훈련을 하도록 도와드립니다”
단순히 조미료를 쓰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천연 식재료를 발효해서 효모균들이 살아있는 음식을 먹고 스스로 면역력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다.
“시중에 파는 식초는 석유에서 뽑아낸 성분으로 만들어져요. 빙초산을 식용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원래 식초는 시지 않아요. 재료에 따라 감칠맛, 단맛, 고소한 맛 등 다양한 맛이 나지요. 제대로 만든 식초만 잘 음용해도 건강에 많은 도움이 돼요”
김 대표는 서울 막걸리 학교, 고창 우리술학교와 복분자 연구소에서 전문가 과정을 마치고 (사)한국술문화연구소 이사로 활동 중인데, 전라도에 전래되는 ‘술 조리서’가 없는 것을 크게 아쉬워했다.
“다른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요리에 관한 고문헌을 보면 술 얘기가 반을 차지해요. 예로부터 술이 음식으로 대접받았던 거지요. 그런데 음식 문화가 발달한 전라도에서 술을 다룬 문헌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에요”
그는 아쉬워하는데 그치지 않고 ‘장성전통주연구회’ 사람들과 장성을 대표할 수 있는 술과 안주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매달 자연요리와 전통주, 발효에 관심 있는 이들을 모아 자신이 배운 것들을 대가 없이 전달하고 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닌 ‘같이 어울려 나누고 도와서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저도 그렇지만 같이 내려와 계시는 저희 어머님도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풀 뽑고 이웃집 마을(마실)도 가시고 하면서 나름 바쁘게 지내시거든요(웃음). 딸 셋 중 둘은 결혼을 했고 막내가 내년에 대학을 졸업해요. 그 후로는 아내도 이곳에서 함께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아내는 지금 산야초 학교를 다니며 귀촌’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장성 사진작가협회 회원들과 함께 장성의 절경과 숨어있는 문화재, 사진 찍기 좋은 곳을 발굴해 내는 작업도 하고 있고, 치유센터 1층에서 상설 전시도 한다. 작년 여름밤에 열었던 작은음악회(7989 힐링 콘서트)는 가까이에서 문화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이들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축령산을 오르는 길 중 추암은 관광, 금곡은 영화, 저희 모암은 힐링과 휴양의 느낌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축령산을 찾아올 수 있도록, 그래서 장성군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애쓸 생각입니다”
장성을 대표하는 자연요리와 전통주를 개발하고 싶다는 그의 꿈이 꼭 이뤄지면 좋겠다. 그를 위해서, 장성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