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군 삼계면 소재지에서 2.5km 떨어졌으며 발옥산의 남서기슭, 해발 110~120m의 남향으로 자리잡은 대무마을은 마을입구에서 전체가 한눈에 다 보일만큼 작고 고즈넉한 마을이다.
현재 13호의 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가장 어린 이웃의 나이가 61세로 환갑잔치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렇다보니 마을의 평균나이가 75세에 이르며 이미 혼자가 된 어르신들도 전체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발옥산이 마을을 안고 있는 모양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덕분에 대무마을은 마을의 입구에서부터 따듯하고 푸근한 느낌이 가득했다.
이 마을에서 5대째 살고 있다는 오달근(82)씨는 “원래는 오씨들집성촌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다”며 “사람이 많이 살때는 19가구까지 살기도 했는데 아이들도 많아 초등학생이 약 25명~30명 까지 되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대무마을의 아이들은 대부분 사창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학교가 약 2km의 거리에 있어서 그다지 멀지 않았고 상무대가 들어오고난 후부터는 마을앞을 다니는 버스가 하루에 약 30회정도 다녀 교통에 불편함이 거없었다.
또한 마을에서는 1979년부터 정기 반상회때 한가정당 1천원씩 거둬 마을금고를 설치하고 자제자금을 만들어 마을의 진입로 확장, 마을의 공동창고 등을 만들었으며 1988년부터는 마을의 공동 기금이 약 150만원 정도 모아진 것을 가지고 가구당 각출은 그만두고 마을의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 14%로 빌려주기도 했었다고 한다.
오씨는 “그때는 다들 힘들었다. 그래도 다들 돕고 살려는 마음이 있어서 참 재미있었다”며 “농사를 쉬는 백중날이면 돈 있는 집에서 돈을내서 먹을 것을 장만해 다같이 마을의 모정에 모여 여자들이 만들어온 호박전이며 갈치조림 같은 안주들을 만들어 내오면 막걸리에다가 먹으며 놀곤 했다”고 이야기하는등 푸근한 마을의 인심과 인정많았던 이웃들을 자랑하며 미소지었다.
마을의 뒷산인 발옥산은 스님들이 쓰는 식기를 엎어놓은 모양이라 하여 발옥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마을의 동북쪽에는 독사들이 많이 살았다 하여 살무사 골 이라는 골짜기가 있었고 이외에도 산이 깊어 늑대, 여우, 호랑이 들이 살았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곤 한다.
또한 마을의 이름에 유래를 보면 사실인지는 알수 없으나 마을에 큰 무기창고가 있어서 대무동이라고 불리우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전해지며, 근처의 대명산에는 마을의 무기고가 있어 무슨일이 생기면 대명산의 봉우리에서 나팔을 불기시작해 지금도 이 봉우리는 나팔봉이라고 불리운다.
오씨는 “우리 마을은 농악놀이도 유명했었다”고 자랑하며 “마을에 농악팀이 꾸려져있어서 설날부터 정월 보름까지 농악을 울리며 걸궁이라는 농악을 울리기도 했으며 이외에도 당산굿, 길거리에서 벌이는 길굿, 우물가에서 벌이는 샘굿, 가가호호 마당에서 벌이는 마당굿, 부엌에서 벌이는 정제굿 등 여러 가지 굿에 농악팀이 참여했었다”고 말하는등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어 그는 “그때만해도 티비나 선풍기 같은것이 없기 때문에 밤이되면 다들 모정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래서 술도 한잔씩 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러면서 친해지고 그러다보니 서로 이해하고 싸울일이 거의 없었다”며 “지금은 몆집 남지도 않았고 워낙 오래 같이 지낸 사람들이라 다들 식구같아서 정말 좋다”고 이야기했다.
대무마을을 바라보며 고즈넉한 마을의 따듯한 인심과 서로를 챙기며 정답게 살아가는 모습의 아름다움이 고스라니 전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