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기가 파손되어 기기를 새로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휴대전화기에 저장되었던 주소록이 죄다 사라져 버렸다. 형제들이나 내 가족들의 전화번호는 금방 새로 저장했지만 지인들 대부분은 아직 복구하지 못한 경우가 다수다.
주소록이 사라지면 ‘동작 그만' 상태가 되어 버린다. 여기저기 옛날 수첩을 뒤져 전화번호를 찾아내고는 있으나 완전 복구는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수기로 기록된 지인들의 이름을 찾아 휴대전화기에 전화번호를 일일이 입력하면서 나는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지인들 중에는 10년, 20년 전에 연락이 끊겨 관계가 소원해진 경우들도 있음을 알았다. 게다가 세상을 떠난 지인도 있어 순간 인생무상을 느껴 한참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이참에 주소록 개편 작업을 새로 하기로 했다.
오래된 수첩에는 직장 다닐 때 업무관계로 맺어진 사람들, 고향 친구들, 친한 문인들, 선배들, 그리고 누구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빛바랜 글씨로 적혀 있다.
그 이름을 적을 때는 분명히 나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화도 여러 차례 주고받았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연들이 나와 그들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나무에서 떨어져 사라져간 낙엽처럼 잊혀진 이름들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세월이고, 그것이 인생인가보다.
지인들의 이름을 새로 정리하여 휴대폰에 입력을 하는 중에 작고한 지인들의 이름과 마주쳤을 때 가슴이 싸해졌다. 나와 친하게 지냈던 지인인데 주소록에서 이름을 뺄까, 말까 하고 망설였다. 다시는 연락할 길이 없으므로 빼야 할 것 같은데 그러자니 내가 야멸찬 사람 같이 느껴진다.
결국 나는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그 지인을 기억하기 위해 내 휴대폰 주소록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입력해 두기로 했다. 세상을 떠났어도 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분으로 생각하고 싶어서였다.
그런 지인들이 몇 사람이 있었다. 전화번호는 있으나 연락을 할 수 없는 사람! 전화번호로 연락을 할 수 없으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란 것을 나는 문득 깨달았다. 디지털 시대의 슬픔 같은 것이라고 할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하면서 더 이상 나와 교유 관계가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사람, 어떤 연유로 거리가 멀어진 사람, 수첩에 적혀 있으되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 다 뺐다.
그러고 보니 주소록이 홀쭉해졌다. 나의 행동반경이 좁아져 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내가 주소록 복구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본 아들은 일부러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며 새로운 제안을 한다.
“주소록 정리를 안해도 아빠가 필요하거나 연락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어오면 자동으로 주소록이 만들어져요. 앞으로 6개월 안에 전화를 걸어오지 않는 사람은 아빠의 지인이라고 할 수 없고 친구도 아니어요.”
딴은 듣고 보니 그럴싸한 견해다. 그러나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므로 나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찾는 일을 계속했다.
낡은 수첩에는 오래 연락이 끊겼으나 나하고 끈끈한 관계였던 반가운 후배의 이름이 나타났다. 학생 시절에 연극활동도 같이 했고, 글 쓰는 일에도 내가 도움을 주었던 막역한 후배다. 과분하게도 그 후배는 당시 나를 두고 주변에 ‘평생 은인’이라고까지 했던 잊힐래야 잊을 수 없는 후배였다.
나는 10여 년 전에 만나고 그 후로 연락두절 상태로 있는 ‘휴면 후배’다. 어쩔까, 이름을 입력할까 말까. 그러기 전에 나는 수첩에서 찾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보기로 했다. 그새 전화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전화를 울려도 받지 않는다.
아, 내 전화번호가 바뀌었으니 모르는 전화번호여서 안받는가보다. 문자를 날렸다. ‘아무개야, 전화를 받아라.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마’ 그래도 답신이 없다. ‘아무개야, 나 누구다’ 역시 묵묵부답. 할 수없이 나는 제법 긴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날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연락이 없는 가여?” 지인의 볼멘소리다. “전화번호가 몽땅 날아가서 그래, 미안.” 나의 살가운 대답이다.
출처 : 시민의소리(http://www.siminsori.com)
주소록이 사라지면 ‘동작 그만' 상태가 되어 버린다. 여기저기 옛날 수첩을 뒤져 전화번호를 찾아내고는 있으나 완전 복구는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수기로 기록된 지인들의 이름을 찾아 휴대전화기에 전화번호를 일일이 입력하면서 나는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지인들 중에는 10년, 20년 전에 연락이 끊겨 관계가 소원해진 경우들도 있음을 알았다. 게다가 세상을 떠난 지인도 있어 순간 인생무상을 느껴 한참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이참에 주소록 개편 작업을 새로 하기로 했다.
오래된 수첩에는 직장 다닐 때 업무관계로 맺어진 사람들, 고향 친구들, 친한 문인들, 선배들, 그리고 누구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빛바랜 글씨로 적혀 있다.
그 이름을 적을 때는 분명히 나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화도 여러 차례 주고받았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연들이 나와 그들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나무에서 떨어져 사라져간 낙엽처럼 잊혀진 이름들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세월이고, 그것이 인생인가보다.
지인들의 이름을 새로 정리하여 휴대폰에 입력을 하는 중에 작고한 지인들의 이름과 마주쳤을 때 가슴이 싸해졌다. 나와 친하게 지냈던 지인인데 주소록에서 이름을 뺄까, 말까 하고 망설였다. 다시는 연락할 길이 없으므로 빼야 할 것 같은데 그러자니 내가 야멸찬 사람 같이 느껴진다.
결국 나는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그 지인을 기억하기 위해 내 휴대폰 주소록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입력해 두기로 했다. 세상을 떠났어도 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분으로 생각하고 싶어서였다.
그런 지인들이 몇 사람이 있었다. 전화번호는 있으나 연락을 할 수 없는 사람! 전화번호로 연락을 할 수 없으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란 것을 나는 문득 깨달았다. 디지털 시대의 슬픔 같은 것이라고 할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하면서 더 이상 나와 교유 관계가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사람, 어떤 연유로 거리가 멀어진 사람, 수첩에 적혀 있으되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 다 뺐다.
그러고 보니 주소록이 홀쭉해졌다. 나의 행동반경이 좁아져 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내가 주소록 복구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본 아들은 일부러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며 새로운 제안을 한다.
“주소록 정리를 안해도 아빠가 필요하거나 연락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어오면 자동으로 주소록이 만들어져요. 앞으로 6개월 안에 전화를 걸어오지 않는 사람은 아빠의 지인이라고 할 수 없고 친구도 아니어요.”
딴은 듣고 보니 그럴싸한 견해다. 그러나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므로 나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찾는 일을 계속했다.
낡은 수첩에는 오래 연락이 끊겼으나 나하고 끈끈한 관계였던 반가운 후배의 이름이 나타났다. 학생 시절에 연극활동도 같이 했고, 글 쓰는 일에도 내가 도움을 주었던 막역한 후배다. 과분하게도 그 후배는 당시 나를 두고 주변에 ‘평생 은인’이라고까지 했던 잊힐래야 잊을 수 없는 후배였다.
나는 10여 년 전에 만나고 그 후로 연락두절 상태로 있는 ‘휴면 후배’다. 어쩔까, 이름을 입력할까 말까. 그러기 전에 나는 수첩에서 찾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보기로 했다. 그새 전화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전화를 울려도 받지 않는다.
아, 내 전화번호가 바뀌었으니 모르는 전화번호여서 안받는가보다. 문자를 날렸다. ‘아무개야, 전화를 받아라.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마’ 그래도 답신이 없다. ‘아무개야, 나 누구다’ 역시 묵묵부답. 할 수없이 나는 제법 긴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날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연락이 없는 가여?” 지인의 볼멘소리다. “전화번호가 몽땅 날아가서 그래, 미안.” 나의 살가운 대답이다.
출처 : 시민의소리(http://www.simi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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