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북 고령에서 있었던 일이다. 농장의 우리를 뛰쳐나간 암사자 한 마리가 농장에서 20미터 떨어진 숲 그늘에 있다가 당국이 사자를 포획하러 보낸 총잡이한테 사살되었다. 농장을 나간 지 1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아 며칠 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다. 동물을 함부로 살처분한 것도 못마땅했지만 사진으로 보니 사자는 날씨가 너무 더워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아주 편안한 모습을 하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표정이 ‘이제 살 것 같다’하는 얼굴이었다.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농장 주인은 농장을 사들일 때 암수 한 쌍의 사자를 인계받았다. 그동안 수사자는 폐사했고, 암사자는 농장 주인과 사이좋게 잘 지냈다. 워낙 사람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사람을 보고도 으르렁거리지 않고 길들여진 짐승같이 되었다고 한다.
사자는 운이 나빠 하필이면 그날 우리가 열려 있어 그리로 사자가 더위를 피하려고 나갔다. 사자는 우리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폭염을 파하려고 숲속이 그리워 그늘을 찾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농장주는 사자가 없어진 사실을 당국에 신고했고, 당국은 총잡이를 보내 여지없이 사살하고 만 것이다. 내가 특별히 사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가 인간이 만든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는 것도 답답한 일인데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느닷없이 총알 세례를 받고 죽임을 당한 어이없는 사태에 아연실색했다.
당국은 사자에게 총을 겨누기 전에 농장주로부터 사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결정했어야 했다. 마취총으로 사자를 기절시켜 포획할 수도 있었음 직한데 일고의 여지도 없이 쳐들어온 적군에게 쏘듯 총알을 내갈기다니, 너무 무작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2011년엔가 서울시는 서울대공원에서 사람들에게 재주를 피우며 지내던 남방큰돌고래를 제주 앞바다로 돌려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울시는 물론 무슨 동물단체, 시민단체들이 떠들썩하게 이것을 뉴스로 만들던 기억이 난다.
난 이때도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서울대공원의 돌고래 한 마리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려는 계획에 진정 순수한 마음이 있었다면 돌고래 말고도 수많은 동물을 야생의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맞지 않는가 하고.
아무리 좋게 봐도 이것은 하나의 ‘쇼’에 지나지 않았다. 전 세계에도 알려지고 지지와 응원을 받았지만 특정한 한 마리 돌고래를 고향 바다로 방류하는 과장된 선전은 나로서는 마냥 손뼉을 칠 수가 없었다. 세계의 선진국들에선 동물복지, 동물권이 존중되고 있다. 동물도 이 지구에서 보호받고 인간과 더불어 존중받는 생명체로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동물을 미물로 여겨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다소 낯선 개념일 수도 있지만 야생동물 중 상당수가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어떤 개체는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고, 서식지 파괴,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등으로 많은 동물이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자도 그 가운데 한 종이다. 인간으로부터 학대받고 사는 동물들이 무수히 많다. 동물권은 다시 말하지만, 생명연대 차원의 공존개념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동물복지를 적극 지지한다.
동물 중에는 종의 보존, 치료 등의 이유로 보호받아야 할 종이나 개체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자연보다 동물보호소가 더 안전한 일도 있다. 동물원이 단순히 야생동물을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멸종위기 동물 보전을 위해서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에서 돌고래 한 마리를 제주 바다로 보낸 것은 환경보전의 중요성에 대한 선전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하고 애써 이해한다. 동물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쇼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행사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동물복지, 동물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자연에 길들여진 동물들을 사람이 다시 길들이는 것은 아무래도 슬픈 일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야생에 가 있어야 할 멀쩡한 동물들을 가두어 놓고 재미로 보여주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본다.
만일 야생의 동물들을 철창에 가둬놓고 전시용으로 보여주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거라면 그 철창에 인간종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물에게도 사람처럼 자유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출처 : 시민의소리(http://www.siminsori.com)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아 며칠 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다. 동물을 함부로 살처분한 것도 못마땅했지만 사진으로 보니 사자는 날씨가 너무 더워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아주 편안한 모습을 하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표정이 ‘이제 살 것 같다’하는 얼굴이었다.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농장 주인은 농장을 사들일 때 암수 한 쌍의 사자를 인계받았다. 그동안 수사자는 폐사했고, 암사자는 농장 주인과 사이좋게 잘 지냈다. 워낙 사람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사람을 보고도 으르렁거리지 않고 길들여진 짐승같이 되었다고 한다.
사자는 운이 나빠 하필이면 그날 우리가 열려 있어 그리로 사자가 더위를 피하려고 나갔다. 사자는 우리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폭염을 파하려고 숲속이 그리워 그늘을 찾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농장주는 사자가 없어진 사실을 당국에 신고했고, 당국은 총잡이를 보내 여지없이 사살하고 만 것이다. 내가 특별히 사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가 인간이 만든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는 것도 답답한 일인데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느닷없이 총알 세례를 받고 죽임을 당한 어이없는 사태에 아연실색했다.
당국은 사자에게 총을 겨누기 전에 농장주로부터 사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결정했어야 했다. 마취총으로 사자를 기절시켜 포획할 수도 있었음 직한데 일고의 여지도 없이 쳐들어온 적군에게 쏘듯 총알을 내갈기다니, 너무 무작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2011년엔가 서울시는 서울대공원에서 사람들에게 재주를 피우며 지내던 남방큰돌고래를 제주 앞바다로 돌려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울시는 물론 무슨 동물단체, 시민단체들이 떠들썩하게 이것을 뉴스로 만들던 기억이 난다.
난 이때도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서울대공원의 돌고래 한 마리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려는 계획에 진정 순수한 마음이 있었다면 돌고래 말고도 수많은 동물을 야생의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맞지 않는가 하고.
아무리 좋게 봐도 이것은 하나의 ‘쇼’에 지나지 않았다. 전 세계에도 알려지고 지지와 응원을 받았지만 특정한 한 마리 돌고래를 고향 바다로 방류하는 과장된 선전은 나로서는 마냥 손뼉을 칠 수가 없었다. 세계의 선진국들에선 동물복지, 동물권이 존중되고 있다. 동물도 이 지구에서 보호받고 인간과 더불어 존중받는 생명체로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동물을 미물로 여겨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다소 낯선 개념일 수도 있지만 야생동물 중 상당수가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어떤 개체는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고, 서식지 파괴,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등으로 많은 동물이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자도 그 가운데 한 종이다. 인간으로부터 학대받고 사는 동물들이 무수히 많다. 동물권은 다시 말하지만, 생명연대 차원의 공존개념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동물복지를 적극 지지한다.
동물 중에는 종의 보존, 치료 등의 이유로 보호받아야 할 종이나 개체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자연보다 동물보호소가 더 안전한 일도 있다. 동물원이 단순히 야생동물을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멸종위기 동물 보전을 위해서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에서 돌고래 한 마리를 제주 바다로 보낸 것은 환경보전의 중요성에 대한 선전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하고 애써 이해한다. 동물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쇼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행사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동물복지, 동물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자연에 길들여진 동물들을 사람이 다시 길들이는 것은 아무래도 슬픈 일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야생에 가 있어야 할 멀쩡한 동물들을 가두어 놓고 재미로 보여주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본다.
만일 야생의 동물들을 철창에 가둬놓고 전시용으로 보여주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거라면 그 철창에 인간종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물에게도 사람처럼 자유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출처 : 시민의소리(http://www.simi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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