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장성군청 앞에서 ‘변진섭 법무사’ 사무소를 운영해온 변진섭 씨가 법원에서 공직생활 30년, 법무사 생활 20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자유인이 되어 새로운 삶에 도전한다.
변진섭 법무사는 장성군 북일면 성덕리에서 태어나 북일초등학교, 살레시오 중학교, 광주고등학교, 조선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법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변진섭 법무사는 진도, 곡성, 영광, 장성, 광주 광산구 등기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부산지방법원 형사과장(법원서기관)으로 정년 퇴임했다.
2002년 장성등기소장에 재직할 때 당시 40여만 필지 부동산 등기부의 수작업 위주 업무형태를 일괄 전산화 작업으로 바꾸는 등 업무혁신을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 등으로 법원행정처장상, 대통령상(2004)을 받았다.
정년퇴직 후 2005년 장성군청 앞에서 ‘변진섭 법무사 사무소’를 열어 법원에서 경험한 다양한 재판 처리 등을 바탕으로 민원인들의 어려운 고충을 해결해 주기도 하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었던 민원인들의 소장을 무료나 다름없는 저렴한 비용으로 대신 써주고, 민원 현장을 직접 찾아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꼼꼼함과 성실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2007년에는 지역신문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본지 대표이사에 취임하여 장성군민신문이 중앙 및 지방일간지 못지않은 언론지로서 자부심을 갖게 하도록 지역신문의 위상을 높게 하였다.
2009년 광주고등학교에서 열린 2009 광고인 한마당에서 ‘자랑스런 광고인상’을 수상했다. 장성인 출신으로 두 번째 수상자이다.
법무사를 그만두는 이유에 대해 묻자 “30년 공직생활을 했고, 20년 동안 법무사를 했다. 만 나이로 80세가 되었으니 이제는 노후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가장 큰 이유는 몸이 불편한 아내를 보살펴 주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법원에 근무할 때 정부에서 보내준 유럽 여행을 제외하곤 가까운 일본에도 한 번 다녀오지 못할만큼 바쁘게 살아왔다는 변진섭 법무사는 “좀 여유를 갖고 살아도 됐는데 너무 바쁘게 살아온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일생을 살아오면서 크게 후회할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남은 나의 삶은 아내를 돌보고, 마음의 여유도 누리고, 몸도 지치지 않을만큼만 부리고 싶다”고 했다.
변진섭 법무사는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와 법무사 사무소를 열어 많은 사람의 도움도 받았고, 어려운 민원을 해결해 주면서 보람도 얻었다.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한 인생 2막이었다. 모든 분에게 일일이 찾아가 인사를 하지 못한 점 송구하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