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以四敎 文行忠信(자이사교, 문행충신)
“공자는 네 가지를 가르쳤다. 문과 행과 충과 신이다.”
문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학문을 부지런히 닦는 것이다. 행은 배운 것을 독실하게 실천하고, 충은 마음을 닦아 진실하게 하며 신은 말한 것에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공자는 충(忠)한 사람의 예로 백이, 숙제, 태백을 예로 들었다. 이들은 임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스스로 그 자리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공자의 충(忠)은 욕심을 비우는 것이다.
공자는 살아생전에 성현을 볼 기회가 없다면, 군자라도 한번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다. 군자는 중용을 실천하는 사람이고, 중용을 실천하려면 어진 마음(仁)을 간직해야 한다. 그런데 인(仁)하려면 충서(忠恕)해야 한다. 서(恕)는 용서하는 마음이며 배려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공자는 앞 구절에서 “그대들은 내가 숨긴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나는 그대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나다”고 하였다.
공자는 말로 가르치는 분이 아니었다. 늘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먼저 말하지 않고, 제자들의 물음에 대해 대답했다.
따라서 제자들은 공자가 말하지 않을 때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고 짐작했을지 모른다. 의사는 환자의 몸에 종기가 났을 때 바로 수술을 하지 않는다. 종기가 곪아서 터질 때까지 기다린다.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도 마찬가지다. 의심이 생겨 궁근한 것이 말이 입에서 감돌고, 생각이 깨우치지 못해 갑갑할 때까지 기다린다. 풍선이 다 부풀렸을 때는 바늘 끝만 닿아도 탕하고 터뜨려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일을 ‘알 속에서 새끼가 껍질을 뚫고 나오려고 할 때 어미가 밖에서 껍질을 깨주는 일’을 말하는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한다. 알이 새끼로 성장하여 껍질을 뚫고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 때 어미는 알을 쪼지 않는다. 공자의 가르침은 그와 같다. 제자가 의심이 풀리지 않아 궁금하고, 갑갑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자녀를 가르치고 기를 때도 마찬가지다. 자녀가 스스로 의심을 풀어가고, 해결하는 모습을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어린아이가 넘어져도 일으켜 주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립심을 길러주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