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자왈, 가아수년, 오십이학역, 가이무대과의)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몇 년 동안 틈을 내서 50세의 나이로 [주역]을 배워 큰 잘못이 없게 하였다.”
역(易)은 주역(周易)을 가리키는 말로 고대에는 천수(天數)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천수는 ‘타고난 수명이나 하늘이 정한 운명’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공자는 위정편에서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하고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하고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蹂矩)”라고 했다. 공자가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고 한 것은 주역을 배운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마천이 “공자는 만년(晩年)에 역(易)을 좋아했다”고 하였는데 이 기록을 보고 일부 학자들이 공자가 주역을 배운 것은 60대 후반 곧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뒤라고 주장하였다. 청대의 혜동은 50(五十)을 70(七十)으로 바꾸었고, 주희(주자)는 오십을 졸(卒, 마침내)로 바꾸어 “내가 몇 년 동안 틈을 내어 마침내 주역을 배워서 큰 잘못이 없게 할 수 있었다”라고 풀이하였다.
하지만 사마천은 논어의 술이편에 나오는 이 구절을 보고 만년이라고 표현하였다. 공자 당시에는 오십 세가 늦은 나이인 만년에 해당하였다.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의 평균 수명은 사십 세가 안 되었다고 전한다.
따라서 오십 세는 늙은 축에 해당된다. 공자는 죽을 때까지 공부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분이다. 따라서 그가 만년인 오십 세에 주역을 공부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공자가 주역을 배우고 천명을 알았다고 한 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운명론을 믿었다는 뜻이 된다. 공자의 시대에는 태어나면서 사람의 운명이 정해졌다. 태어나면서 신분이 정해지고 그 신분은 바뀔 수 없다. 재물도 마찬가지다. 농업이 가장 근본이 되는 당시에 토지를 소유하는 것은 일부 귀족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따라서 주역을 배워 큰 잘못이 없게 하였다는 말은 하늘이 준 운명을 알아 욕심을 내지 않았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