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SK 임원들이 차량 블랙박스를 모두 떼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운전기사를 고정하지 않고 수시로 바꾸기로 했다.
블랙박스에 차량 운행의 모든 정보뿐 아니라 차 속에서의 대화 내용까지 녹음된다는 것이 첫째 이유이고,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명태균 씨의 통화 녹취가 그의 운전기사에 의해 빼돌려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통령의 개인적 통화 내용이 공공연히 전파를 탈 수 있을까?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틀림없는 현실이다.
대통령만이 아니다. 윤관석 전 민주당 국회의원이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과의 핸드폰 통화에서 “형님, 기왕 하는 김에 우리도 주세요…” 하는 육성이 방송에서 생생하게 재생되었고 소위 ‘돈봉투 사건’으로 포장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통화 기록을 지워버렸지만, 포렌식 하면 그대로 되살아나니 얼마나 무서운 공포의 핸드폰, 그리고 블랙박스인가?
운전기사 문제도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A 의류업체 임원이 운전기사에게 사적 심부름을 시키고 폭언을 한 녹취록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폭로하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것을 비롯 유사한 사례들이 빈발해왔다.
이 때문에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는 대다수의 운전기사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최근 들어 이와 같은 녹취록 파문이 잇달아 터지면서 우리 사회를 불신의 늪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다.
정말 명태균 씨와 김건희 여사와의 통화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충실하던 운전기사가 통화 내용을 밖으로 빼돌릴 것으로 의심했겠는가? 국회의원이 당직자와 핸드폰으로 부담 없이 전화를 하는데 그것이 소리 없이 녹음되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요즘 삼성과 SK 임원들이 블랙박스를 떼어버리자 일반 기업체 CEO들도 그런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우리 사회가 불신의 늪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예부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그렇게 해서 개인적으로도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각자도생의 ‘외로운 늑대’가 되고 만다. 내 주변의 모든 인적 구성원이 의심의 대상이 되고 여러 형태의 검증을 계속해야 하는 그야말로 ‘피곤한 사회’가 된다.
진짜 뉴스도 가짜 뉴스인가 검증해야 하고, 시시각각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에 낯선 전화 받기가 두려우며 늘 다니던 병원도 진료 전에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고… 그런데 내 앞에 손을 내밀고 있는 상대방의 가슴 속은 어떻게 검증해야 할 것인가?
정말 지금 우리 사회가 위기에 빠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