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2만불 시대로 가자
느닷없는 2만불 시대로 가자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3.07.0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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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한 개혁 추진이 먼저 아닌가?
<칼럼>


- 2만불 시대라는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는 것보다 1만불 시대를 제대로 안착시키는 것이 먼저


밑도 끝도 없이 "2만불시대"로 가자는 슬로건이 메스컴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한편으로 노조는 이 느닷없는 2만불 시대의 길목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라도 되는 듯한 논조들도 하나둘 늘어간다. 정부의 강경기조를 눈치챈 재계는 마치 지금까지 억지로 참고나 있었다는 듯이 벌떼처럼 일어나 연일 노조에 맹공을 퍼붓고 있으며, 족벌수구언론들 또한 재계의 편에서서 차제에 아예 노조를 말살하자고 선동한다.

철도파업이 실패하기 이전인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슨 2만불시대니, 노동정책의 변화니 하는 주장들이 나오리라고 국민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느닷없는 2만불시대로 가자느니, 노사관계의 미국식, 유럽식 도입이니 하는 주장들이 신문과 방송을 도배하며, 마치 2만불시대를 노동자들이 가로막거나 아니면 노사관계가 미국식이나 유럽식이 아니어서 우리가 잘살지 못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이게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인가?

불과 얼마 전까지 노무현 정부가 개혁적 성격을 가진 정부라고 믿는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들 예를 들어 특검과 대미, 대일외교, 이라크 파병, 네이스문제, 특히 작금의 노동정책 등등을 깊이있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이 정부가 아직도 개혁정부라고 믿어 주는 쓸개빠진 사람은 이제 없으리라고 본다.

2만불 시대로 가자는 주장부터 그렇다. 1만불에 걸맞는 정치, 사회, 문화적 상부구조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면서 갑작스럽게 2만불 시대로 가자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세계 12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 국민소득 1만불의 선진국인 우리 한국을 이러한 생산수준과 생산력에 걸 맞는 사회문화수준, 법과 제도, 정치문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갖추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노대통령 자신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우대받는 사회, 능력있는 사람이 중시되는 사회,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생산과 분배가 균형있는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국민들은 생각했고,

이러한 사회적 불합리와 모순 속에서 그 고통스런 하중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런 주장을 하는 노무현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 주었다.

상식과 원칙이 통용되는 사회라는 것은 경제적 수준과 사회·문화적 법적·제도적 장치들이 부합해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1만불의 국민소득이 창출되기까지 억눌리고 희생되어 온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대우가 과연 있기나 했었던가? 천민자본주의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예인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종의 문제는 해소되고 있는가? 날로 깊어가는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는 해소되고 있는가? 모두 예전 그대로다.

노무현 정부에 국민들이 걸었던 기대는 그리 큰 것도 감당 못할 엄청난 그 무엇도 아니었다. 1만불 시대에 맞는 시민사회의식을 정착시키고, 국민일반에 1만불의 문화수준을 즐길 수 있도록 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종을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현재의 정부 모습은 불편한 원칙과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건설 보다도 손쉬운 권위주의를 택해 가는 모습이며, 기득권층의 반발이 너무 심해 실현이 어려운 노불리스 오불리제 구현보다는 차라리 기득권층과 한배를 타는 고상한 방식을 선택한 것 같다.

이러다 보니 이 정부는 아젠다가 없는 정부가 되어가고 있고, 흩어지는 민심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역사성과 국민적 당파성에 영합할 수 없는 권위주의 정권들이 애용해 왔던 방법, 즉 장미빛 미래를 제시하게 된 것 아닐까? 갑자기 불거진 2만불 시대는 그래서 나온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정권보다 그것을 개량화 하려는 정권은 훨씬 나쁜 쪽에 속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계급들의 문화와 지향성 중에 좋은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만족할 만한 경제적 부와 풍요로운을 구가할 수 있기 전까지는 기층인 노동자나 농민, 시민운동조직의 지향성과 목적은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진보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주된 동력이라는 면에서 지배계급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충분한 생산력의 뒷받침 없는 개량화의 시도는 기층에게 이러한 지향성과 목적, 즉 사회적 진보에 기여케하는 자기동력을 상실하게 하는 역사적 범죄행위에 다름아니다. 천민자본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현실 속에서 더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주된 힘은 아직 개량화와 억압을 통한 안정보다 다소간의 긴장과 대립속에서 진보해 나가는 데에 있다.

2만불 시대 운운이나 미국식이니 유럽식이니 하는 노사정책 추진주장 등을 이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해 갈 수 있는 토대를 갖추기도 전에 그 토대 자체를 허물어뜨리려는 불순한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의 역할은 2만불 시대 운운하며 썩어 문드러진 건물에 화려한 겉치장을 더하면서 국민들을 더 깊은 비원칙과 비상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도래할 2만불 시대와 개량화 시대를 대비해 먼저 허공에 떠 있는 1만불 시대를 이 땅에 제대로 안착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이루는 것 만으로도 5년은 짧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이 정권은 부정과 비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사회에 해결해야 할 병리를 더욱 키우는 우를 범해서 실패하는 정권이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김기성 비상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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